littleblacksandle

유진목.

다른 사람의 글

연애의 책 중 낮잠


아파트 주차장에서 만나

비가 그친 상가 길을 걸었다


들인 것을 다시 내고 있는 행상들 틈에서

비가 완전히 그친걸까

당신은 하늘을 올려다본다


식당이란 식당은 모조리 지나친 것 같은데

그래도 입맛이란 지치질 않고


한참을 기다려 매운 생선 요리를 먹는 일

땀을 뻘뻘 흘리고

여기 물 좀 더 주세요 하고


당신은 테니스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우리는 생선의 뼈를 바르는 데 서툰 사람들


그런데 테니스를 칠 줄 알았어요?


이제 그만 기분 풀어요 해도


당신은 좀처럼 나에게 올 줄 모른다

그래요 정말 화가 날 일이야

나는 생선을 뒤집어서 한입 크기로 떼어낸다

나라면 더했을 텐데 대단해 당신

줄지 않는 밥 위에 생선살을 올려주고


이럴 때 당신은 꼭 내가 낳은 적이 있는 것 같다


신발을 찾아서 신는 동안에

문간에 서서 당신은 담배를 피우는

맑고 개운한 날

주머니를 뒤지다 말고

내것을 언제 가져간 거예요

괜히 손차양을 하고서

당신에게 몇 걸음 다가간다


한 걸음

한 걸음 반


두 걸음

두 걸음 반


세 걸음

세 걸음 반




연애의 책 중 사이


시옷에서 이응까지 선 채로 포개었다가 아득히 눕는 이야기 보드라운 바람이 창문을 넘어오고 눈부신 커튼이 샤샤 서셔 소쇼 수슈 스시 우리는 동그랗게 아야 어여 오요 우유 으이 가느다란 입술이었다가 오므린 입술이었다가 벌어진 입술로 누워 있는 사이 속옷을 아무렇게나 벗어서 발끝에 거는 사이 까르르 속삭이고 웃어버린 이야기 상처난 상처도 오해한 오해도 너는 쉬쉬 하고 나는 엉엉 울고 붉어진 이마를 쓸어주는 저녁에도 거기서 우리는 석양을 마주보는 사이 소원을 말하고 들어주는 사이 서운한 게 많아도 꾹 참는 사이 어쩌다 새옷을 입으면 멋지다고 말해주는 사이 말하자면 별 게 다 근사하고 별 걸 다 기억하는 사샤 서셔 소쇼 수슈 스시 서서히 멀어지다 아련히 돌아눕는 시옷에서 이응까지 아야 어여 오요 우유 으이 빼곡한 우리 사이 소인처럼 찍혀 있는




연애의 책 중 잠복


그 방에 오래 있다 왔다 거기서 목침을 베고 누운 남자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는 우는 것 같았고 그저 숨을 쉬는 건지도 몰랐다


부엌에 나가 금방 무친 나물과 함께 상을 들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 방에 있자니 오래된 아내처럼 굴고 싶어진 것이다 일으켜 밥을 먹이고 상을 물리고 나란히 누워 각자 먼 곳으로 갔다가 같은 이부자리에서 깨어나는 일


비가 온다 여보


당신도 이제 늙을 텐데 아직도 이렇게나 등이 아름답네요


이건 당신의 뼈


그리고 이건 당신의 고환


기록할 것이 많았던 연필처럼


여기는 매끄럽고 뭉둑한 끝


어떻게 적을까요


이불 한 채

방 한 칸




연애의 책 중 신체의 방


아침에 일어나 아침을 보았다

한 사람이 가고 여기 움푹 패인 베개가 있다

당신은 나를 사랑하게 될 거요

그러나 여기 한 사람이 오고 반듯한 베개가 있다

저녁에는 일어나 저녁을 보았다

나는 당신을 죽일 거에요

아침에 일어나니 아무도 없었다

금방 또 저녁이 오고 있었다

[출처] 유진목. 신체의 방|작성자 mara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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